롯데야구

[잡담] 우리는 웃을 수도 있었다.

김애쉬_ 2023. 3. 13. 14:38

참담하다. 체코전을 승리로 가져갔고, 그 와중에 박세웅이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바로 전 경기에 마무리로 던진 박세웅을 다음 경기 선발로 기용한 감독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었다.

일본전은 오히려 상정내였다. 원래부터 나는 모든 포커스를 호주전에 두고 있었고, 조별 라운드에서의 일본전은 높은 확률로 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전을 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단순했다. 대회의 초반에 붙기 때문에 변수가 적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전력차이가 명확했다.

일본은 첫 상대로 조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중국을 상대했고, 큰 차이로 승리하며 타자들의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투수들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로 한국전을 대비했다. 처음부터 일본은 한국전을 대비할 목적으로 선수들을 준비시켰다. 반면에 한국은 5팀 중에서 아마도 2등을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 호주전을 치르고 한일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 상태의 일본을 상대로 이길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전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만큼 호주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가져가야 했다. 냉정하게 평가해서 한국은 조 2위의 전력이 맞았다. 중국과 체코는 프로리그 조차 없는 아마추어 수준이고, 파워랭킹에서조차 한국은 호주보다 위라고 평가받았으니까.

B조의 양상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하위팀 2팀이 고정, 압도적인 강팀이 대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8강 진출을 확정지었으니 2등을 가리기 위해 한국과 호주가 경쟁하는 그림이 다였다. 그랬을 터였다. 뉴스와 기사들은 한사코 10일 한일전을 도쿄돔 '참사' 라고 일컫지만, 사실 진정한 참사는 그 전날의 호주전이었다. 첫날 호주전을 이겼으면 일본전을 참패하든 체코전에서 고전을 하든 중국전을 패배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호주가 중국과 체코를 다 꺾어도 한국이 3패를 하지 않는 이상 승자승으로 한국이 올라갔을 테니까. 선수들이 아무리 부진해도 컨디션 조정이라는 핑계로 해프닝 취급할 수 있었을 거니까.

너무 많아 글로 적으려면 끝도 없을만큼 이강철호는 저열한 경기운영을 보여줬다. 스스로 정한 원칙도 깨고, 평가전 2경기에 모두 나간 선수를 또 기용했다. (호주전에서 이미 3연투였던 김원중과 정철원은 일본전과 체코전에도 등판하며 5연투를 기록했다.) 김광현은 호주전에서 7회까지 불펜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경기가 뒤집히자 갑자기 다음날 선발로 결정되었다. 호주 대표팀이 포크볼 상대를 잘 못할 것이라며 준비했던 선발자원 박세웅은  쓰지도 않았고, 김원중과 이용찬은 패전조 짬처리반으로 기용했다. 

강백호가 세레머니 주루사를 한 것이 이슈몰이를 하여 대표격으로 욕을 먹긴 했지만, 나는 사실 그건 그렇게 욕먹을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강백호는 소형준과 김원중의 실점으로 1점 뒤진 5:4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치고 포효했다. 그 과정에서 발 뒤꿈치가 베이스에서 떨어졌고, 상대 야수가 이를 놓치지 않고 태그를 해서 아웃이 되긴 했지만, 역전을 허용한 다음 이닝에서 어린 선수가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다 실수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결과로만 따지면 강백호는 대타로 출전해서 외야수 뜬공으로 물러났다손 칠 수도 있는 문제니까.

문제는 4회까지 출루조차 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타선이었고, 평가전에서 타격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라인업을 그렇게밖에 짜지 못한 감독의 역량부족이었다. 그리고 소소하게는 8회 말 쫓아가는 상황에서 홈으로 쇄도하지 않은 박해민도 나는 사실 조금 더 이슈가 되었어야 됐다고 생각한다. 강백호가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강백호는 차세대 국대를 책임질 수도 있는 어린 선수고, 나이에 비해 스타성이 뛰어난 나머지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는데 이번에는 안좋은 쪽으로 그 스타성이 발휘가 됐다는 이야기다.

투수 운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다.

KBO는 대회 두 달 전부터 4800만원을 들여 WBC 공인구를 3600개를 구매해서 대표단에 지급을 했다. WBC 공인구는 KBO 공인구와는 달리 크기, 실밥, 표면의 미끄러운 정도 등이 조금씩 달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얼마간 들었을 수는 있다. 삼성의 원태인 선수는 WBC 공인구가 MLB의 공인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해서 자기 팀의 외국인 투수인 뷰캐넌에게 상담을 받는 등 공인구 적응에 힘을 쏟았고, 박세웅 선수는 두 달 동안 공인구를 들고 잠에 잘 정도로 한시도 몸에서 떨어뜨려놓지 않고 대회를 준비했다. 이들 선수들에게는 공인구의 차이는 변명거리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있었다. 반면에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공인구가 잘 맞지 않는다며 연습경기 내내 사사구를 남발하던 선수는, 3경기 중 단 한경기만을 등판하고 그 외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전에서 선발인 김광현을 제외하고 유이하게 유효한 투구를 했던 박세웅과 원태인은 각각 체코전과 중국전 선발을 맡게 됐다. 그들은 이미 그 이전에도 대회에서 수십구의 공을 던져냈던 기록을 만들어 냈었다.

김원중은 공인구 적응에 성공한 투수들 중 한명이다. 그는 이번 대회(평가전을 포함해서) 5번 등판하면서 4번을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는 상태에서 등판했다. 5번째 등판하는 체코전 1사 1루 상황이 김원중이 이번 대회에서 겪은 '가장 편한 상황'이었다. 평가전에서 150Km/h를 넘겼던 김원중의 직구는 체코전에서는 143Km/h가 겨우 나올 정도까지 떨어졌다. 두산의 정철원 선수는 체코전에서 5번째 등판을 한 직후 덕아웃에서 고통스럽게 팔을 감싸는 모습이 포착이 됐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에서 오른팔이 아닌 왼팔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단기전 대회에서는 당일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는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인 투수가 이미 4번 등판을 한 뒤 구속이 10Km/h가  떨어진 투수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 말은 그 선수를 제외한 모든 투수가 준비가 덜 된 것이고, 그것은 이미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몸상태가 좋지 않겠지만 담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선수는 체코전을 이기고 양 팔을 머리 위까지 올리며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KBSN스포츠 유튜브 채널에서는 박찬호 해설위원이 소위 '쓰로워'들을 호통치는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었는데, 하필 그 썸네일에 대표팀에서 제일 고생했고 혹사당한 선수 둘(김원중, 정철원)을 썼다. 야구 팬들의 항의로 영상은 곧 내려가긴 했지만, 가장 고생했던 선수들이 매체에 가장 많이 노출됐다는 이유로 모든 어그로를 몰아받으며 듣지 말아야 할 욕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정작 욕을 먹었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일본은 대회 시작 전에 예고한 대로 다르빗슈 유를 선발투수로 올렸다. 투구수 제한 조건을 의식한 투수 운용도 돋보였다. 대회가 열리는 시기를 감안해서 이번 WBC에서는 연투를 제한한다든지, 한계투구수를 정한다든지 선수들을 보호하는 여러가지 규칙을 만들어두었다. 이때문에 선발투수들이 오래 던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본은 1+1 텐덤 전략을 들고 나왔다. 경기에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매뉴얼을 짜 왔다. 다르빗슈를 생각보다 잘 공략하긴 했지만 그 뒤로 올라온 일본 투수들을 우리는 공략하지 못했다.